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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이야기② 타이어 부터 소방차 제조까지
김종대 | 승인 2018.11.09

적어도 70여 년 전, 서울과 인천을 오가던 선길 장수들의 장사 길을 따라가 보면 문래동의 풍경이 드러난다. 항구도시 인천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의 물품들이 밀려들어왔다. 그 물품을 서울에 내다 팔려는 사람들로 인해 인천 제물포역은 늘 부산했다.

아낙들은 큰 대야를 머리에 이고 인천 소래포구며, 월미도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기차 수화물 칸에 실고 서울로 향했다. 디젤기관차였던 경인간 열차는 60년대 후반까지도 수화물 칸을 달고 다녔고, 그곳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었다.

제물포에서 장사 길을 떠난 우마차 주인들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이들은 인천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도중에 부평 ‘가토제철소’ 공장 인근에서 흘러나온 철강재를 재빠르게 구입해서 서울의 을지로나 문래동 철공소 등에 원료로 팔았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소사(부천)에서 봉숭아와 포도를 받아다가 서울의 마을 곳곳을 다니는 광주리를 장사 아낙들에게 팔아 이문을 얻었다. 우마차 길손들은 오류동 인근에 오면 지체된 시간 탓에 갈증이 더해지지만, 나귀는 어슬렁거리며 속도를 낼 줄 모른다.

마음이 조급한 길손은 하늘 한번 쳐다보고, 곰방대로 담배 연기를 연실 뿜어대다가 상습적으로 냅다 나귀 엉덩이에 채찍 얹는다. 때마침 불어오는 강바람이 소 뼈다귀 끓이는 냄새를 길손에게 전해주면 구로동쯤 도달한 것이다. 먼 길을 달려온 길손은 컬컬했던 목 줄기로 마른침을 넘기며 주막을 찾아 나선다.

구로동 언덕배기(동양대학 앞길)를 내려오면 흐르는 물소리며 강바람이 길손을 맞는다. 문래동 일대 늪지의 물은 내려 갈수록 큰 도랑을 만들어 마을 안쪽까지 철철 흐르는데, 그곳에서 길손은 나귀를 세우고 시원스럽게 목덜미와 정강이를 씻어 낸다. 이쯤 되면 주막은 코앞이다.

길손은 마차에 실어 올렸던 철강재를 비롯해서 소금가마와 날생선, 그리고 생필품들을 다독인다. 마지막으로 먼 길을 걸어온 나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주막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여인에게 재촉한다.

“주모! 탁주 한 잔 주시오”

건네주는 탁주 한 사발을 냉큼 들이킨 길손은 주막과 이웃한 소규모 철물점에 물건을 내려놓고, 대장간으로 향한다. 나귀의 편자를 갈아주면서 낫이며 괭이며, 삽이며, 부천과 삼산동, 계산동, 김포 등의 농촌 마을에 내다 팔 철물들을 챙긴다.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선길장사의 여정은 아마도 이런 풍경으로 문래동에서 짐을 풀었을 것이다.

1941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타이어 제조회사인 '조선다이야 공업주식회사'가 영등포에 자리잡았다. 1940년대 들어 일본은 한반도를 기지로 삼아 대륙 진출을 꾀했다. 이를 위해 조선 안에 타이어 제조공장이 필요했고 1941년 일본 ‘브리지스톤’이 한국에 진출했다

길손들이 잠시 짐을 풀고, 목을 축였던 일대에는 대규모 공장이 들어섰다. 조선다이야 영등포공장(1942년 완공)을 말한다. 이 공장은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해 조선 내에 타이어 제조공장이 필요해 지자 1941년 일본 ‘브리지스톤’이 한국에 진출한 것이다.

‘조선다이야’ 영등포 공장이 들어선 곳은 현재의 신도림 역 인근이며, 부지는 14만평이나 된다. 이 공장에서는 트럭과 자전거 타이어를 합쳐 하루 300개, 연간 11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했다. 1955년에 이 회사는 ‘한국다이야’로 개명하였고, 1958년에 효성그룹이 인수하여 오늘의 ‘한국타이어’로 재생시켰다. 공장은 모두 대전과 금산으로 이전하여 당시의 공장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하동환자동차 담배갑 선전

타이어공장이 문래동 인근에 자리 잡자 구로동과 문래동 사이에 ‘하동환자동차’공장이 들어섰다. 자동차정비기술자였던 하동환씨가 설립한 이 공장은 미군용 트럭을 개조하여 자동차를 만들었다. 1967년에는 V67모델 20대를 베트남에 수출하기도 했다. 또 1976년도에는 소방차 등과 같은 특장차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초기에 철판 구입이 어려워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만든 버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버스는 서울과 전국에서 운행 되었다. 1977년 동아자동차로 개명 되었다가 1988년 쌍용그룹에 인수되었다.

두 개의 규모가 큰 공장들이 문래동 인근에 들어선 이유는 경인선 철도와 경부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므로 원재료 수입과 완제품의 지방공급이 쉬웠고, 안양천과 도림천 등 주변에 산재한 하수시설이 공장부지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와 ‘하동환자동차’의 역사는 지금의 문래동이 ‘철강재 판매 1번지‘라는 닉네임을 갖게 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김종대  jdkim@steelpri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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