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송원(松園) 장상태(張相泰) 회장

동국제강이 3일 경기도 소재 선영에서 고(故) 송원(松園) 장상태(張相泰) 회장의 20주기 추모식을 거행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추모식에서 “선친께서는 대한민국 철강산업 선진화를 위해 평생 혼신을 다하신 철인(鐵人)이셨다”고 회고하며 “선친의 철강에 대한 열정을 본받고, 경영혁신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동국제강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감안해 유족과 친지 중심으로 추모식을 간소화했다.

장상태 회장은 1956년 동국제강에 입사해 2000년 4월4일 타계하기까지 45년간 철강 외길을 고집한 진정한 철강인이었다.

생전 장상태 회장은 1960년대 부산 용호동 앞바다 갯벌을 매립하고 국내 최대 민간 철강 공장인 부산제강소를 가동하며 한국 철강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어냈다.

이후 국내 최초 용광로 가동, 국내 최초 현대식 전기로 가동, 국내 최초 후판 생산 등 선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장상태 회장은 동국제강그룹을 90년대까지 동국제강, 연합철강(現 동국제강 부산공장), 한국철강, 동국산업, 한국강업(現 동국제강 인천공장) 등을 아우르는 재계 10위권의 철강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국가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평가받아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훈했다.

고(故) 송원(松園) 장상태(張相泰) (1927~2000)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슴없이 개혁하다” 영원한 철인(鐵人)

4월 4일은 동국제강의 2대 회장인 장상태 회장 별세 20주기다.

50년대 이후 동국제강의 성장과 한국 철강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주역 장상태 회장.

장상태 회장은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1955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을 정도의 재원이었다.

1956년 29세의 나이로 아버지 장경호 회장이 경영하던 동국제강에 입사하면서 철강업에 본격적인 발을 내디뎠다. 이때부터 장상태 회장이 쓴 동국제강의 성장사는 한국 철강산업의 성장사다.

장상태 회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 철강사인 동국제강을 이끌며, 1963년 부산 용호동에 민간 최대 철강 공장을 건설했다. 현대식 전기로 제강 기술 도입, 국내 최초 후판 생산 등 한국 철강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부산, 포항, 인천 등 한국 철강산업의 본류에서 그와 동국제강은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썼다.

포스코 명예회장 박태준 회장과는 포항제철소(현 포스코) 건설 과정에서 교우하며 평생의 지기가 됐다. 그는 동국제강그룹을 1990년대까지 동국제강, 연합철강, 한국철강, 동국산업, 한국강업 등을 아우르는 재계 10위권의 철강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슴없이 개혁한다’는 개선과 혁신을 경영의 핵심으로 삼았고, “아내의 반지를 팔아서라도 설비에 투자하겠다”며 철강 산업의 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장상태 회장은 본인이 60년대 건설했던 부산 용호동 제강소를 1999년까지 포항으로 이전하고, 200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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